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풍경류행 (風景流行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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풍경류행 (風景流行)

풍경을 따라 흘러 다니는 유랑자와 같은 삶이었다. 남도의 시골, 서울, 플로리다, 바라나시, 예루살렘, 아테네, 그리고 동경 - 차이의 마력을 지닌 낯선 풍경이 고향의 풍경과 만난다. 파도너울처럼 끝 모르고 준봉이 겹치는 것이 지리산 노고단의 풍경이었다. 파르나소스 산의 풍경은 달랐다. 지극히 투명하고 또렷하고 웅대한 대기가 나를 감싸 안았다. 헌걸찬 라임스톤 덩어리, 젓가락처럼 점점이 박힌 사이프러스, 갓 나온 팝콘처럼 흰 꽃을 곳곳에 피워 낸 양지식물 밀크베츠, 군무처럼 저지대를 뒤덮은 올리브 숲 - 삼라만상이 자신의 명확한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. 20여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순차적으로 목격한 이 두 개의 풍경 – 지리산과 파르나소스산의 두 장면 - 은 누가 청한 것도 아닌데 서로 다가와 겹쳐졌다. 그리스와 한반도 남부는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었다. 후자의 풍경은 가까운 산자락은 녹색을 띠다가, 뒤로 갈수록 색깔이 엷어지면서, 맨 뒤의 것은 하늘과 섞여버린다. 면이 겹치며 색조가 엷어지다 어느새 녹색이 파랗게 변한다. 신호등의 녹색불이 파란불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일까? 몬순의 습기가 낳은 이 풍경을 뭐라고 부를까? 미묘한 차이들이 연달아 줄지어선 미분의 – 또는 적분의 - 풍경이라고 부르면 어떨까? 그리스의 탁 트이고 투명한 대기가 모든 것을 거침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포르노그래픽한 풍경이라면, 우리의 풍경은 다 보여주지 않으면서 이면에 대한 상상력과 무한대의 깊이감을 자극하는 에로티시즘의 풍경이 아닐까? 이 ‘차이’의 만남 속에 담긴 환경의 비밀은 무엇이고 건축과 도시에 던지는 메세지는 무엇일까? <풍경류행 (風景流行)>은 유랑자의 기억에 아로새겨진 풍경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를 모은 에세이집이다.

 




 
 
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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